초저가 전기차의 등장, 美 시장 흔들
베이조스가 투자하고 포드 출신이 만들다
‘빈 캔버스’ 전기차, 소비자 손에 완성

“진짜 2만 달러짜리 전기차가 나왔다.”
그러나 이 전기 픽업트럭은 지금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주인공이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투자하고, 포드와 GM 출신 자동차 전문가들이 설계한 슬레이트 오토(Slate Auto)의 첫 작품 ‘슬레이트 트럭’은 전기차의 공식을 정면으로 뒤엎고 등장했다.
미국 연방 전기차 세금 공제(7,500달러)를 적용하면 실구매가가 2만 달러, 한화 약 2,700만 원 이하로 떨어지며, 보조금 없이도 2만 7,500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이 전기차 모델에서는 흔히 기대되는 고사양 인포테인먼트나 고급 내장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슬레이트 트럭은 극단적으로 단순한 사양과 기본기에 충실한 설계로, 자동차 시장에 새로운 실용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첫 전기차’의 기준을 다시 쓰다

슬레이트 트럭은 전장 4.44m, 적재함 1.52m, 전면 트렁크 198L라는 컴팩트한 사이즈에 최대 적재 중량 650kg, 견인력 450kg을 갖췄다.
기본형에는 52.7kWh 배터리가 탑재돼 241km 주행이 가능하고, 84.3kWh 대용량 옵션을 선택하면 최대 386km까지 늘어난다. 201마력의 후륜 싱글 모터는 제로백 8.3초, 최대 120kW 충전 속도로 20~80% 충전에 약 30분이 소요된다.
외관은 도색을 생략한 회색 복합 소재 그대로 제공되며, 실내는 수동 크랭크 창문과 스마트폰 거치대, 간단한 버튼 조작의 공조장치만이 탑재된 최소 구성이다. 다만 긴급 제동, 전방 충돌 경고, 자동 하이빔, ESC, 후방 카메라 등 필수 안전 사양은 빠짐없이 갖췄다.
슬레이트는 ‘포드 모델 T’와 ‘폭스바겐 비틀’처럼 대중을 위한 첫 차를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포드 브롱코 스포츠와 리비안 R1T의 감성을 일부 차용해 직선성과 실용미를 살린 디자인을 완성했다. 이는 단순한 저가형 차량을 넘어, 전기차 대중화의 새로운 전환점을 노리는 전략적 시도다.
단순함을 넘어 ‘변신’까지 가능한 차

슬레이트 트럭은 ‘없는 게 미덕’인 기본형에서 시작해, 소비자 손에 따라 SUV나 오프로드 차량으로 ‘변신’할 수 있는 구조를 지녔다. SUV 키트를 장착하면 뒷좌석, 루프 패널, 롤바, 에어백 등이 추가돼 5인승 차량이 되며, 전동 창문이나 스피커, 휠 등의 업그레이드도 가능하다.
슬레이트는 무려 100가지 이상의 액세서리를 출시할 예정이며, 이 모든 설치는 직접 하거나 승인된 센터를 통해 가능하다.
“우리가 만들면, 당신이 완성한다(We Built It. You Make It.)”는 슬로건 아래, 이 전략은 단순히 고객 취향을 반영하는 수준을 넘어 낮은 차량 마진을 보완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됐다.
이는 슬레이트가 단순한 완성차 제조사가 아닌, ‘플랫폼형 전기차 브랜드’를 지향한다는 방증이다.
스타트업이 아닌, 업계 베테랑들의 작품

슬레이트 오토는 겉보기만 스타트업일 뿐 내부는 미국 자동차 산업의 베테랑들로 채워졌다. 포드, GM, 스텔란티스, 할리 데이비슨 출신 인재들이 대거 합류해 불과 1년여 만에 200명 이상의 조직을 구성했고, 연내 500명까지 확대 할 예정이다.
CEO는 크라이슬러 출신, 회장은 할리 데이비슨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인물이며, CFO는 오토바이 제조사에서 10년 넘게 재무 총괄 출신이다.
투자진 역시 탄탄하다. 베이조스를 비롯해 LA 다저스 대주주 마크 월터, 리빌드 매뉴팩처링의 토마스 툴 등 미국의 고액 자산가들이 참여했다.
기대와 불안 사이의 ‘실험’

슬레이트 트럭은 2026년 말부터 인디애나폴리스 공장에서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며, 연간 15만 대 생산을 목표로 한다.
다만 시장 반응은 엇갈린다. “이 가격에 신뢰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차고에 한 대 두고 직접 꾸며보기 딱 좋은 차”라는 기대가 공존한다.
전기차 스타트업들이 고급화와 기술 중심 전략을 앞세우는 흐름 속에서, 슬레이트는 실용성과 사용자의 선택권에 무게를 뒀다. 그 도전이 일회성 파격에 그칠지, 시장의 방향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