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했는데 연금은 한참 남아
기다리자니 무직, 당기자니 감액
정년연장 아닌 재고용이 해법?

“회사에서는 쫓겨났는데, 연금 받으려면 1년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A씨는 지난해 회사에서 퇴직했지만, 아직 국민연금을 받을 나이가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생활비가 부족했던 그는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며 구직시장에도 뛰어들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아 결국 조기연금을 선택했다.
받을 수 있는 돈이 줄어든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당장 생계를 이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조기연금 수급자 ‘사상 최대’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조기연금 수령자는 2018년 58만 명에서 2023년 85만 명으로 급증했다.
2023년 신규 수급자 수만 11만2천 명으로, 전년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 사상 최대 인원을 기록했다. 심지어 올해는 조기 수급자가 더욱 늘어나 1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 배경에는 연금 수급 나이의 단계적 연장이 있다. 2013년부터 5년마다 1세씩 늦춰지며, 2033년부터는 만 65세부터 받을 수 있도록 개편됐다.
2023년 수급 개시 나이가 만 62세에서 63세로 넘어가면서, 1961년생이 그 직격탄을 맞았다.

이들은 은퇴 후 아무런 소득 없이 1년을 더 기다려야 했고, 결국 상당수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조기연금을 신청했다.
실제로 수급 나이가 연장된 2013년과 2018년에도 조기 수급자는 전년 대비 각각 7.5%, 18.7% 증가했다.
하지만 문제는 금전적 손해인데, 1년 앞당기면 연금이 6% 줄어들고, 5년을 앞당기면 무려 30%가 깎인다.
지난해 기준 조기 수급자의 평균 연금은 월 69만 원 수준에 불과했다.
“정년 연장이 해결책?”… 기업은 오히려 반대

이 같은 상황에서 ‘정년 연장’이 논의됐지만, 전문가들은 이마저도 고개를 저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정년 연장은 기업 부담만 키우고 고령 인력 활용에는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100인 이상 기업 중 93%가 이미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운영 중이지만, 그 중 73%가 연장에는 부정적이었다.
고령자 고용보다 임금피크제 소송, 조기퇴직 증가, 젊은 층 승진기피 등 부작용이 더 컸다는 것이다.

대신 ‘퇴직 후 재고용’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은행과 서울대가 발표한 공동 보고서에 따르면, 고령층이 소득 공백 없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년 연장보다 재고용 제도를 확산시켜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실제로 재고용된 고령자가 65세까지 일하면 정부 노인 일자리보다 월 소득이 179만 원 많고, 이후 연금 수령액도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임금체계 변화가 필수적인데, 연공서열 대신 직무·직능 기반 임금으로 유연하게 전환되어야만 고령자도 기업이 부담 없이 고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은은 일본의 사례를 들며 “정년 연장, 정년 폐지, 재고용 등 다양한 형태를 노사 협의로 채택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라며, 장기적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