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은 올랐는데 한숨은 깊어졌다
대출이자 덫에 갇힌 ‘영끌족’의 현실

“매달 이자가 270만 원이에요. 생활비는 카드 돌려막기로 겨우 버팁니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직장인 김 모 씨(34)는 2020년 전세난과 불안한 집값 상승에 떠밀리듯 대출을 받아 8억 원짜리 아파트를 구매했다.
연 2.5% 금리에 고정금리 5년짜리 혼합형 주담대를 받은 그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지만, 최근 금리가 5%대로 재조정되면서 이자 부담이 두 배 가까이 불어났다.
김 씨는 금리를 조금이라도 낮춰보고자 대환 대출을 알아봤지만, DSR 규제에 막혀 시도조차 어렵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기대감으로 시작한 내 집 마련의 꿈이, 이제는 끊임없는 압박과 절망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금리는 오르고, 규제는 강화되면서, 영끌족들의 선택지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갑작스러운 금리 상승, ‘이자 폭탄’ 현실화

2020년, 집값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 정부의 저금리 기조는 주택 매수를 자극했다.
당시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평균 2.44%였고, 많은 이들이 5년 고정 뒤 변동금리로 전환되는 ‘혼합형 대출’을 선택했다. 문제는 그 고정 기간이 끝나고 있다는 점이다.
2025년 4월 현재 5대 시중은행의 변동금리는 평균 5.02% 수준으로, 단순 계산만으로도 대출 금리는 두 배 넘게 상승했다.
5억 원을 대출받았을 경우 월 상환액이 196만 원에서 269만 원으로 70만 원 이상 증가한다.
설상가상으로 금리를 낮추기 위한 대환도 쉽지 않은데, 2021년부터 적용된 DSR 규제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DSR은 주택담보대출뿐만 아니라 신용대출, 자동차 할부금 등 모든 원리금을 포함해 계산된다. 대출 여력이 이미 소진된 차주들은 사실상 갈아탈 수단이 사라진 셈이다.
늘어나는 압류·경매, 현실로 다가온 위기

이자 감당이 어려워진 차주들은 결국 압류와 경매로 내몰리고 있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2024년 임의경매로 넘어간 부동산은 13만 9847건으로 전년 대비 32.4% 증가했으며, 특히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집합건물은 5만 5419건으로 41.8%나 급증했다.
같은 해 압류 건수는 18만 6700건으로 2010년대 초반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고, 가압류 건수는 14만 5439건으로 사상 최대를 찍었다.
압류 사유는 대출 상환 불능, 세금 체납, 전세보증금 반환 불이행 등 다양했다.
NH농협은행 윤수민 부동산전문위원은 “압류와 경매 건수 증가가 곧 집값 하락을 뜻하지는 않지만, 가계의 부담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영끌족’의 절반은 수도권 30·40대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수도권에 거주하는 30~40대가 영끌족의 절반을 차지했다.
이들은 대부분 주택담보대출 외에도 신용대출까지 동원해 자금을 마련했고, 결과적으로 집값 상승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보고서는 이 같은 과도한 차입이 소비 여력을 줄이고, 경제 회복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들은 금융 제약 상태에 놓여 있어 추가 차입이 어렵고, 고정 지출이 줄지 않아 소비 위축 폭이 더 크다는 분석도 포함됐다.
금융연구원의 임형석 선임연구위원은 “DSR 규제를 보다 정교하게 운영해 가계부채를 장기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7월 DSR 3단계 예고… 더 좁아지는 퇴로

오는 7월부터는 스트레스 DSR 3단계가 도입될 예정이다. 이 조치가 시행되면 대출 문턱은 한층 더 높아진다. 이미 규제에 막혀 대환조차 어려운 차주들에게는 더 큰 압박이 될 수 있다.
부동산 업계는 “서울 등 수요가 많은 지역은 그나마 버티겠지만,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의 경우 퇴로가 완전히 막힌 상황”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정부는 가계부채 연착륙을 위해 제도적 보완을 준비 중이지만, 금리 상승과 규제 강화가 맞물리는 현 시점에서 영끌족의 고통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