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부양’에 노후마저 붕괴
60년대생의 인생 2막은 고달프다

“퇴직 후엔 여행도 다니고, 취미 생활도 할 줄 알았죠. 그런데 매달 빠져나가는 생활비를 감당하려니 남는 게 없더라고요.”
3년 전 대기업에서 퇴직한 김 모 씨는 최근 새벽마다 물류 정리를 하러 나선다. 그는 “퇴직금은 부모님 요양비와 딸 결혼자금으로 다 나갔다. 다시 일하지 않으면 생활이 안 된다”라고 토로했다.
전국의 60년대생, 약 850만 명이 이 같은 노후 없는 인생 2막을 살고 있다. 부모를 부양하면서도 자녀까지 책임져야 하는 이들에게 은퇴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출근의 시작이다.
850만 ‘마처세대’… 부양과 돌봄, 그 사이

196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전체 인구의 16.4%를 차지하는 최대 인구 집단이다.
재단법인 ‘돌봄과 미래’의 조사에 따르면 그중 15%는 부모와 자녀를 동시에 돌보며 월평균 164만 원을 쓰고 있었다. 이들은 매달 자녀에게 88만 원, 부모에게 73만 원을 지출하는 중이었다.
‘노후를 자녀가 책임질 것’이란 기대는 사라졌다. 이들 대부분은 “노후는 내 책임”이라고 답했고, 실제로 자녀와 함께 살고 싶다는 응답은 6%에 불과했다.
‘배우자와 단둘이 살고 싶다’는 응답이 66%였지만, 소득 수준에 따라 이조차도 쉽지 않은 바람이 됐다.
퇴직 후 재취업… “일할 수밖에 없어요”

퇴직 후에도 이들은 여유로운 노후를 즐기지 못했다. 평균 퇴직 나이는 54.1세였지만, 이후 54%가 재취업 또는 창업에 나섰고, 평균 2.3개의 일자리를 전전하고 있다.
재취업 사유로는 “아직 일할 수 있는 나이라서”(37%) 다음으로 “가계가 필요해서”(29%)라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이들은 은퇴 후에도 여전히 생계 전선에 서 있다.
현재 수입을 목적으로 일하고 있는 이들은 전체의 70%였고, 이 중 46%는 “지금 일자리를 잃을까 봐 불안하다”고 말했다.
노후 준비가 됐다고 말한 사람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오히려 56%는 “준비되지 않았다”고 답하기도 했다.
디지털 능숙하지만… 노후 설계는 막막

모바일뱅킹, AI 등 최신 기술에 능숙한 ‘퍼레니얼’ 세대로 불리는 60대지만, 정작 노후 설계에는 혼란이 크다.
하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이들은 자산을 갖고 있음에도 자금 사용 목표가 불분명해 불안이 크다고 진단했다.
IRP, 신탁, 즉시연금 같은 상품에 대한 이해도 낮고, 항목별로 구분된 자산 설계 없이 저축만 이어가다 보니 지치기 쉽다.
금융기관의 상품 제안이 이 세대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연금과 신탁이 따로 제시되고 있어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생활비, 요양비, 자녀지원비 등 항목별로 금액을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이를 기반으로 금융 상품을 연계 제안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들은 기존 노년 세대와는 달리 교육·근로·소비 능력을 고루 갖춘 ‘액티브 시니어’로 불리지만, 여전히 경제적 여유는 부족하다.
김용익 돌봄과 미래 재단 이사장은 “이들이 향후 10년 내 가장 큰 돌봄 수요자가 될 것”이라며, “정책 설계는 이들의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